Stig Lindberg
스티그 린드베리
1916 - 1982 Sweden / 스웨덴 아티스트- 구스타브스베리(Gustavsberg) / 근무기간 1937 - 1980
B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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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북부의 작은 도시 우메오(Umeå)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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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미술공예디자인대학 (Konstfack)의 전신인 공예학교 (Tekniska Skolan)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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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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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구스타브스베리>사에 임시직으로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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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식직원으로 입사. 당시 아트디렉터이던 빌헬름 코게(Wilhelm Kåge)에게 사사함. 회사의 배려로 유럽각지에 견학과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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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네르(Gunnel)와 결혼 스톡홀름 시내의 구시가인 감라스탄(Gammla stan)에서 신혼생활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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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예상치 못한 소아마비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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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인 코게와 함께 <봄에 물든 파이안스>란 2인 전시회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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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구스타브스베리> Studio를 주도적으로 설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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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로스(Målerås)유리공방의 디자인고문으로 취임 1947년까지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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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백화점에서 <코게>, <프리베리>, <린드베리> 3인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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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트 헬싱>의 그림책 <Nyfiken I en strut>에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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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트 헬싱>의 그림책 <Musikbussen>에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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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인 코게(Kåge)의 후임으로 회사의 아트디렉터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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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보리에서 열린 <H55>전람회에 테르마, 도미노, 스피사 립 등의 대표작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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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스베리社의 아트디렉터를 아르투르 할드(Arthur Hald)에게 물려주고 회사의 소속은 유지한 채로 국립미술공예디자인대학(Konstfack)의 주임강사로 취임. 1972년까지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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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외베리스(Öberg & Son)사를 위해 트럼프카드를 디자인하다. (*Öberg & Son: 스웨덴 사무용품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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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문. 세이부(Seivu)백화점에서 전시회 개최. 세이부백화점을 위한 포장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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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남부 스코네 지방의 돔스텐(Domsten)에 여름 별장을 마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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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백화점의 아스트리드 샴페와의 협업으로 다수의 textil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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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stfack의 정교수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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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위해 다시 아트디렉터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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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선고를 받고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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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군네르(Gunnel)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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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소속은 유지한 상태에서 이태리로 이주. 자신만의 아뜰리에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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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 알 라시드 호텔에 최후의 공공미술작품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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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에서 사망
스티그 린드베리(Stig Lindberg, 1916-1982)는 20세기 스웨덴의 대표적인 도자예술작가이자 만능 디자이너이다. 끊임없는 창의력과 모양, 비율 및 패턴에 대한 탁월한 눈으로 유명한 그는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도자예술작가 중 한 명이었다. 스티그 린드베리는 디자인 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보여준 작가로 가늘고 섬세한 스톤웨어부터 TV 세트, 세면기, 식기, 가정 장식, 직물, 아동 도서, 에나멜 및 유리 예술품까지 일생 동안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스티그 린드베리 는 1916 년 스웨덴 북부 도시인 우메오(Umea)에서 태어났다. 1935 년 스톡홀름의 예술, 공예 및 디자인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2 년 후, 그는 예고없이 스톡홀름 군도에 있는 구스타브스베리(Gustavsberg) 도자기 공장의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구스타브스베리(Gustavsbery)는 그 당시 이미 스웨덴의 수많은 세라믹생산업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이었고 스티그 린드베리가 구스타브스베리에 도착했을 때는 빌헬름 코게(Wilhelm Kåge)와 베른트 프리베리(Berndt Friberg)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 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티그 린드베리는 1937-1980 년까지 구스타브스베리에서 일했다.
1940년대 초 빌헬름 코게와 스티그 린드베리는 구스타브스베리의 스튜디오에서 파이앙스(Faience) 도자기를 채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새하얀 주석 유약을 바른 도자기에 무한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스티그는 1942년 5월 '봄에 물든 파이앙스 도자기'전에서 새롭게 선보인 강렬한 색채를 불어 넣은 파이앙스 작품들로 스웨덴 세라믹 역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전시는 파이앙스 도자기의 대유행을 불러 일으켰고, 파이앙스 도자기가 점점 많은 인기를 얻게 되자 스티그는 혼자서 모든 채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1942년 처음 화가를 고용하여 문양을 만들어 내는 일을 맏기기 시작하여 다음 해 부터 본격적으로 40여명의 채색화가들에게 파이앙스 도자기의 채색을 맡겨 제작했다. 각 채색화가에게는 그들의 소인을 찍게 했다. 파이앙스의 인기는 1957년의 카르네발(Karneval) 시리즈의 출시 후 1960년대 초 쯤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1953년 구스타브스베리의 판매실적이 하락세를 보였을때 스티그 린드베리가 1955년 헬싱보리 전시회에서 선보인 도자기(석기) 시리즈 '도미노(Domino)'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구스타브스베리는 정상 궤도에 다시 오를 수 있었다. 원뿔형, 정사각형, 원통형, 구형 도자기에 그래픽의 흑백 무늬가 대조를 이룬 '도미노'는 현대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스티그 린드베리는 구스타브스베리(Gustavsberg)의 아트스튜디오에서 40년 이상의 독특한 예술성을 띤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전통적이면서 균형적인 형태의 작품에서부터 절개자국이 있거나 다양한 유약으로 복잡한 표면질감을 가진 작품 등 초현실적이면서 기발함을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