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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jørn Wiinblads Fond/Gyldenda
Bjørn Wiinblad

Bjørn Wiinblad

비외른 비인블라드

1918 - 2006 Denmark / 덴마크 아티스트
  • 뉘묄레(Nymølle) / 근무기간 1946 - 1951
  • 로젠탈(Rosenthal)

Biography

  • 덴마크 코펜하겐 외스테르브로(Østerbro)에서 태어나다

  • 코펜하겐 인근 프레데릭스베르(Frederiksberg)의 기술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배웠으며 덴마크 주간지 옘메트(Hjemmet)의 타이포그라퍼 견습생으로 근무

  •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The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에서 시각디자인을 배우기 시작

  • 아카데미 친구인 라스 쉬베르(Lars Syberg)가 도자기 작업을 소개하고 라스 쉬베르(Lars Syberg)의 작업실에서 함께 도자기 작업을 한다

  •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The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하고 코펜하겐 팔레가드(Palægade)의 빙거 갤러리(Binger gallery)에서 첫 전시회를 연다

  • 뉘묄레(Nymølle) 근무,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 작업

  • 요르트에케르(Hjortekær) 지역에 개인 작업실 마련 작품 활동

  • 프랑스 칸(Cannes) 국제 도자기 축제에서 은메달 수상

  • 독일 로젠탈(Rosenthal)의 예술 감독으로 부임

  • 덴마크 링뷔(Lyngby) 지역에 푸른색 목조 주택(Blue House)을 지어 거처와 작업실을 옮김

  •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Magic Flute))를 주제로 한 테이블웨어를 로젠탈(Rosenthal)에서 작업

  •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주년 기념 만찬 테이블웨어 디자인

  • 서울 패럴림픽(Paralympic) 공식 포스터 작업

  • 덴마크 링뷔(Lyngby)에서 사망, 같은 해 비외른 비인블라드 재단(Bjørn Wiinblad’s Foundation) 설립됨

MORE BIOGRAPHY

1918년 9월 20일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덴마크 사민당 의원인 오토 비인블라드(Otto Wiinblad)와 에바 비인블라드(Ebba Wiinblad)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에밀 비인블라드(Emil Wiinblad)는 사민당 신문사인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en)의 창간 편집자였으며 한때 하원의원이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적인 가문에서 태어난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정치, 사회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몽상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예술가적 기질을 지닌 아이로 성장한다.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아버지에게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밝히지만 그의 아버지는 제대로 된 노동을 통한 대가를 받는 직업을 가지는 게 우선이라며 그를 코펜하겐 인근 프레데릭스베르(Frederiksberg)의 기술대학에 보내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배우게 한다. 이후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타이포그라퍼 견습생으로 덴마크 주간지 옘메트(Hjemmet)에서 근무하게 된다. 1945년 비외른 비인블라드 (Bjørn Wiinblad)는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The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하고 그해 코펜하겐 팔레가드(Palægade)의 빙거 갤러리(Binger gallery)에서 첫 전시회를 연다. 도자기와 그릇, 알라딘의 램프에 대한 일러스트, 포스터 들이 전시되었다. 전시회는 폭발적인 반응과 성과를 거두고 함께 많은 수익도 거두게 된다. 또한 작은 도자기 회사였던 뉘묄레(Nymølle)의 예술감독이었던 야콥 방(Jacob Bang, 1943 - 1957 근무)은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뉘묄레(Nymølle)에 합류시킨다. 그는 뉘묄레(Nymølle)에서 다양한 테이블웨어 상품을 내놓았으며 덴마크에서 대중적인 인기도 누리게 된다.

청년시절의 비외른 비인블라드 / 접시 위에 자화상 (Self-portrait on a dish), 1945.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평범한 일상에서 사용하기를 원했다. 이후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덴마크의 흥미로운 작가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한다. 패브릭 작업, 뮤직페스티벌의 포스터 작업, 공연 의상, 무대 디자인 등 덴마크의 대표 디자인 작가로 스웨덴, 노르웨이에서도 인기를 누리며 스칸디나비아의 인기 작가로 뉴욕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1951년 그는 묄레(Nymølle)에서 나와 코펜하겐 북쪽 요르트에케르(Hjortekær) 지역에 자신만의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 활동에 들어간다. 1955년 프랑스 칸(Cannes)에서 개최된 국제 도자기 축제에서 은메달을 수상한다. 1950년대 중반 독일 남부의 도자기 회사 로젠탈(Rosenthal)의 소유주 필립 로젠탈(Philip Rosenthal)은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에게 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교류를 쌓기 시작한다.

비외른 비인블라드와 필립 로젠탈 (Bjørn Wiinblad and Philip Rosenthal)   © The Bjørn Wiinblad Foundation  

마침내 1960년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로젠탈(Rosenthal)의 예술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독일 남부와 스위스에 거처를 두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한다. 그는 로젠탈(Rosenthal)로부터 많은 디자인 비용을 받게 되고 사교와 파티 그리고 각종 예술품의 수집 등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린다. 당시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로젠탈(Rosenthal) 뿐만 아니라 뉘묄레(Nymølle)의 디자인도 함께 작업하였으며 런던을 비롯 유럽 각 지역에서 요청이 들어오는 건축 인테리어 장식, 오페라, 연극, 콘서트홀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디자인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한다. 1966년 덴마크 링뷔(Lyngby) 지역에 거대한 푸른색 목조 주택(Blue House)을 지어 거처와 작업실을 옮긴다.

1969년 클래식과 오페라를 좋아하던 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Magic Flute)를 주제로 한 테이블웨어를 로젠탈(Rosenthal)에서 작업한다. 1971년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 건국 2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행사를 계획한다. 당시 파라 팔레비(Farah Pahlavi) 왕비는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의 마술피리(Magic Flute)를 보고 20세기 가장 호화로운 파티의 저녁 만찬 디너 테이블웨어를 그에게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전세계 왕조와 정치인, 유명 인사들이 참석하고 50톤의 캐비어가 포함된 20세기 가장 호화로운 만찬의 테이블웨어는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의 디자인이었다. 이후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덴마크 링뷔(Lyngby)의 푸른색 목조 주택(Blue House)을 비롯 유럽 여러 나라에 집을 소유하며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병행한다. 이 시기 그는 매일같이 유럽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여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파티를 주최하기도 한다. 그가 디자인한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의 공식 포스터(올림픽 링을 휠체어 바퀴로 바꾼)는 국제적인 찬사를 받는다. 비외른 비인블라드(Bjørn Wiinblad)는 나이듦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다양한 디자인 작업과 파티 등 왕성한 활동을 지속한다. 1998년 그는 유럽 각지에 소유한 집들을 정리하고 스위스 로잔(Lausanne)과 덴마크 링뷔(Lyngby)의 푸른색 목조 주택(Blue House)만 남겨두고 모두 처분한다. 그는 2006년 6월 8일 87세로 링뷔(Lyngby)의 푸른색 목조 주택(Blue House)에서 사망했다. 사후 링뷔의 푸른색 목조 주택은 비인블라드의 보존의지에 따라 비외른 비인블라드 재단에서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링뷔의 푸른색 목조 주택 (Blue House, Lyngby, Denmark)
링뷔의 푸른색 목조 주택 (Blue House, Lyngby, Denmark) 내부

오페라와 천일야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

후궁 탈출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비외른 비인블라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을 모티프로 하여 테이블웨어를 장식했다. 18세기 터키 하렘을 배경으로 한 ‘후궁 탈출’은 모차르트가 26세에 작곡한 작품으로, 모차르트가 빈 극장에서 최초로 성공을 거둔 오페라다. 오페라보다는 뮤지컬에 가까운 형태로, 독일에서는 이를 징슈필(Singspiel,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있는 독일어 노래극)이라고 한다. 당시 유행했던 터키 스타일을 무대에 도입해 관심을 끌었다.

후궁탈출의 내용은 스페인 귀족처녀 콘스탄체가 배를 타고 여행하던 중에 해적들에게 잡혀 터키 고관인 젤림의 후궁에 갇히고, 콘스탄체의 연인 벨몬테가 천신만고 끝에 그녀를 찾아 후궁에서 구출한다는 이야기다. 모차르트가 ‘후궁 탈출’을 작곡했던 18세기는 터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강성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오스트리아 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비엔나 사람들 사이에 터키 풍이 크게 유행했는데, 모차르트는 터키 하렘(후궁)을 작품의 배경으로 했을 뿐만 아니라 터키 군대의 예니체리 밴드 음악에 쓰인 선율을 차용하여 음악적으로도 풍성한 작품을 완성했다. 또한 ‘후궁 탈출’을 작곡할 당시 콘스탄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있던 모차르트에게 이 작품은 연인에게 바치는 헌정 오페라이기도 하다.

"후궁 탈출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 테이블웨어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 영_Magic Flute)

비외른 비인블라드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영감을 받아 테이블웨어와 피겨린을 디자인했다. 테이블웨어는 White 버전과 골드가 가미된 Sarastro 버전이 있다.

모차르트는 1791년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당시 빈에서 오페라 공연이 주로 이루어졌던 궁정극장이 아니라 민중극장에서 공연할 계획으로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를 작곡했다. 황제와 귀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잣거리의 평민들을 관객으로 생각하고 썼다는 뜻이다. 마음을 고양시키는 기품 있는 선율과 가볍고 들뜬 민속적 선율이 혼재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모차르트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는 모두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화려하고 세련된 정통 희극 오페라들이지만, <마술피리>는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한 소박한 징슈필(Singspiel,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있는 독일어 노래극)이었다. 음악뿐 아니라 스토리에서도 상반된 내용의 부조화가 눈에 띈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배경 속에 진지하고 고귀한 내용과 일상적이고 익살스러운 내용이 뒤섞여 있다.

"마술피리(Magic Flute)" 테이블웨어 Sarastro 버전
"마술피리(Magic Flute)" 피겨린 (타미노 왕자, 파파게나, 파미나 공주, 파파게노)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 Hazar Afsanah)

<천일야화> 또는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이야기 모음은 설화 문학 사상 가장 강렬하고 반향이 큰 작품이다. 천일 하고도 하룻밤 동안 지혜롭고 아름다운 세헤라자데가 샤리아르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비외른 비인블라드는 주인공인 지혜롭고 아름다운 세헤라자데와 『신드바드의 모험』, 『알라딘』 등을 테마로 하여 테이블웨어를 디자인했다.

1001 Nacht(천일야화)

세헤라자데(Scheherazade)

샤리아르 왕에게 천일(1001)일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어 결국엔 샤리아르 왕의 마음을 움직인 지혜롭고 아름다운 셰헤라자데를 테마로 한 테이블웨어 시리즈

"셰헤라자데(Scheherazade)" 테이블웨어

신드바드의 모험(Sindbad der Seefahrer/Sindbad the Sailor)

바그다드의 부유한 상인 신드바드의 모험 이야기로 7번의 항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접시 시리즈

Sindbad Der Seefahrer(신드바드의 모험) 접시 시리즈

알라딘과 요술램프 (Aladin and the Magical Lamp)

알라딘과 요술램프에서 가장 중요한 12개의 장면을 모티프로 한 접시 시리즈.

알라딘과 요술램프 (Aladin and the Magical Lamp) 접시 시리즈

포스터

비외른 비인블라드가 디자인 한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의 공식 포스터(올림픽 링을 휠체어 바퀴로 바꾼)는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의 공식 포스터

1963년 덴마크의 캐리지 극장(Carriage Theater)에서 오픈한 “번버리(Bunbury)”의 포스터.

비외른 비인블라드는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진지함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A Trivial Comedy for Serious People)>을 극화한 “Bunbury”의 두 여자주인공 궨들런 페어팍스(Gwendolen Fairfax)와 세실리 카듀(Cecily Cardew)의 이미지를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

번버리(Bunbury)는 <진지함의 중요성>에 나오는 남자주인공 알저논 몽크리프가 꾸며낸 가상의 친구 이름이다.

비외른 비인블라드와 뉘묄레(Nymølle) 도자회사와의 30년 협업 기념 포스터
1996년 덴마크의 륑뷔토르베크 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체하는 "BOGENS DAG(책의 날)"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포스터
뉴욕의 "Colde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의 25주년을 광고하는 포스터

태피스트리(Tapestry)

목신의 오후

"목신의 오후(L'Après-midi d'un faune)"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1842-1898)의 시(詩)로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는 목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목신(牧神)은 그리스 신화의 판(Pan),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Faunus)에 해당한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숲, 사냥, 목축의 신으로 불린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가 말라르메의 시에 영감을 받아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작곡했다. 드뷔시의 이 곡은 발레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창단하여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발레 뤼스’ 최고의 남성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Vatslav Nizhinskii, 1890-1950)가 안무와 주인공을 맡은 <목신의 오후> 발레 공연에 쓰였다.

목신(牧神)은 낮잠을 자던 오후 물의 요정 7명이 목신 근처로 목욕을 하러 온다. 요정을 발견한 목신이 그녀들을 유혹하는 몸짓을 하자 처음엔 호기심으로 다가오던 요정들이 달아나고 한 요정만이 남아 목신과 어울린다. 하지만 그녀도 스카프만을 벗어 놓고 달아나 버린다. 결국 혼자 남은 목신은 요정의 스카프에 입을 맞추고 스카프를 가지고 자기 은신처로 돌아가 스카프 위에서 잠이 든다.

비외른 비인블라드는 주요 모티프인 목신, 요정, 스카프를 서로 어우러지게 표현했으며 특히 목신을 반인반수의 모습이 아닌 목동으로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태피스트리는 비외른 비인블라드가 디자인하고 포르투갈의 룸 아트 콜렉션에서 직조되었다.  총 60개의 작품이 제작되었고 그중 5번째 작품 Edition 5/60
비외른 비인블라드가 디자인한 태피스트리 "봄".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의 한 작품. Kasthall(1889년에 설립된 스웨덴의 양탄자 회사)에서 제작

자료, 사진 출처

2-7 https://www.bjornwiinblad-denmark.com/inspiration/100-years-of-bjoern-wiinbl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