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Rörstrand
로스트란드
1726 -History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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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의 로스트란드 성에서 로스트란드(Rörstrand) 도자기 공장 설립. 초기에는 파이앙스만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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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 상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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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인쇄 장식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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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디너웨어 '세피아(Sepia)'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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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트웨어(flintware)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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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에베리 도자기 공장(Mariebergs porslinsfabrik, 1758-1788)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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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차이나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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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의 교역을 위해 핀란드에 로스트란드의 지사로 도자제조업체 아라비아(Arabia)를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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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 도자기(Feldspar Porcelain)로 만든 식기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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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 마크에 스웨덴의 상징인 왕관 세 개가 추가된 새로운 로고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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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웨어 “그린 안나 Green Anna”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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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왕립 미술학교 출신 알프 발란데르(Alf Wallander, 1862-1914)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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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 발란데르가 스톡홀름 전시회((the Stockholm Exhibition of 1897)에 아르누보 양식의 도자기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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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는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에서 아르누보 스타일의 식기와 항아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다. 알프 발란데르가 예술 감독이 되다. 직원 수 약 1,1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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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코 디자이너 루이세 아델보리(Louise Adelborg, 1885~1971) 입사, 아라비아(Arabia)가 핀란드의 소유로 넘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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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의 로스트란드 공장 폐쇄. 예테보리로 이전하여 생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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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전시회(the Stockholm Exhibition of 1930)에서 루이세 아델보리가 “내셔널 서비스(National Service)”를 선보이다. 나중에 “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로 명칭이 변경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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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웨어 “오스틴디아(Ostindia)” 출시. 군나르 뉘룬드(Gunnar Nylund, 1904-1997)가 예술감독으로 영입되다. 리드셰핑 도자기 공장(ALP, AB Lidköpings Porslinsfabrik)과 합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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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의 모든 생산기지가 현대적으로 새로 지은 리드셰핑((Lidköping) 공장으로 이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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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리 스톨하네(Carl-Harry Stålhane, 1920-1990)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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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벵트손(Hertha Bengtson, 1917-1993)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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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네 베스트만(Marianne Westman)의 “몬 아미(Mon Amie)”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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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하리 스톨하네(Carl-Harry Stålhane)가 군나르 뉘룬드의 뒤를 이어 예술감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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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살라 에케뷔(Upsala-Ekeby)가 로스트란드를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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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에르 페르손(Inger Persson 1936-2021)의 “팝 Pop” 시리즈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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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Upsala-Ekeby) 그룹에서 나온 로스트란드는 아라비아(Arabia)에 통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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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Rörstrand) 설립 250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및 "실비아(Sylvia)" 시리즈 출시. 리드셰핑에 로스트란드 박물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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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는 핀란드 Wärtsilä 그룹이 인수, 1987년 Wärtsilä는 구스타브스베리의 도자기 생산을 인수하여 사업을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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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Wärtsilä는 파산하고 구조조정을 거쳐 학크만(Hackman)이 로스트란드와 구스타브스베리를 인수. 1994년 생산기지를 구스타브스베리에서 리드셰핑으로 이전, 카린 비요르퀴스트(Karin Björquist, 1927-2018 )가 디자인한 노벨상 90주년 기념 디너 서비스 생산. 이후 노벨상 축하 행사에서 계속 사용됨 (2015년까지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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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가 새로운 형태(Shapes)와 색상으로 부활하여 스웨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디너웨어로 재탄생, 1884년부터 사용해온 로고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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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는 모그룹인 학크만의 구조조정으로 이딸라 그룹(Iittala Group)에 편입되었고 2004년 생산기지를 헝가리와 스리랑카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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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셰핑에 있는 로스트란드(Rörstrand) 공장은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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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란드는 이딸라(Ittala), 학크만(Hackman), 아라비아(Arabia)와 함께 핀란드 피스카스(Fiskars) 그룹에 인수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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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네 베스트만(Marianne Westman, 1928-2017)의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몬 아미(Mon Amie)” 재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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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 시리즈 80주년 기념 스웨덴 왕실 공식 웨딩 도자기로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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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디아 Ostindia” 출시 8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틴디아 플로리스 Ostindia Floris”를 선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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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세 아델보리(Louise Adelborg)의 작품 “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 출시 90주년을 기념하여 금테두리의 스웨디시 그레이스 갈라(Swedish Grace Gala) 시리즈를 선보이다
History
스웨덴의 도자기 생산의 역사는 스웨덴의 자유시대(1718년~1772년)와 함께 서막을 연다. 이 자유시대에 해당되는 18세기의 스웨덴은 건축디자인, 예술, 오페라 등의 분야에서 프랑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과학과 문학 분야도 크게 부흥하였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스웨덴의 가장 오래된 도자기 공장 로스트란드(Rörstrand)는 1726년 “진짜” 도자기를 생산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스톡홀름의 로스트란드 성에서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파이앙스 장인으로 일했던 요한 볼프(Johann Wolff)의 지휘 하에 설립되었다. 마이센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재로 오래된 도자기 브랜드이다. 초기에는 파이앙스(faience)만 제작했고 장식도 중국 도자기를 모방하거나 프랑스, 영국의 영향을 반영하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점차 스웨덴을 대표하는 독자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등 스웨덴 도자기의 전통을 자랑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의 대명사가 되었다. 최초의 완전한 디너 서비스가 구성된 것은 1770년대 로코코 양식의 세피아(Sepia) 시리즈다. 그전까지는 모양과 장식이 서로 다른 식기들로 구성되었다. 1800년대 에는 최초의 증기기관을 도입하고 기술적으로 큰 발전을 이룬다, 핸드 페인팅과 더불어 동판을 이용한 전사 인쇄 장식이 시작되었다. 튜린(tureen)과 볼 등을 포함한 그릇 종류가 많은 대형 테이블웨어가 점점 인기를 얻게 된다. 1857년에는 본 차이나 생산에 성공했고 1874년에 러시아와 교역을 위해 핀란드에 로스트란드의 지사로 도자제조업체 '아라비아 Arabia' 공장을 세워 러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1881년경에는 내구성이 매우 뛰어난 장석 도자기(feldspar porcelain)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1884년부터 로스트란드(Rörstrand)의 새로운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탤릭체로 쓴 Rörstrand 도안문자에 스웨덴 왕실을 상징하는 세 개의 왕관 모양이 추가된 디자인이다. 이 마크는 2000년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1890년대는 스웨덴의 산업화가 호황기에 접어들어 일반 가정에서는 다이닝 룸이 화려하게 장식되고 큰 식기를 갖춘 디너 서비스를 사용하게 된다. 이에 발맞춰 로스트란드는 아름다운 일상용품의 제작을 위해 예술가들을 채용한다. 1895년 파리 왕립미술학교 출신으로 아르누보의 선구자 알프 발란데르(Alf Wallander, 1862-1914, 근무기간 1896~1910)가 첫 번째 예술적 협력자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공장의 예술감독도 맡게 되었다. 1897년 스톡홀름 전시회와 1900년 파리세계박람회에 아르누보 양식의 예술적인 도자기와 혁신적인 식기류를 선보였고 로스트란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를 계기로 로스트란드는 테이블웨어의 모델과 장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회사는 점차 확장되어갔다. 1914년 예테보리 도자기 공장을 인수한 로스트란드는 1926년 200년간 운영해온 스톡홀름의 공장을 폐쇄하고 예테보리로 이전했다. 1916년 데코 디자이너로 취업한 루이세 아델보리(Louise Adelborg, 1885~1971, 근무기간 1916~1957)는 스웨덴 식기에 신선한 혁명을 일으켰다. 여름바람에 일렁이는 밀이삭을 모티프로 하여 기형 표면에 섬세하게 형압으로 나타내고 모노톤 컬러로 표현한 디너웨어인 “내셔널 서비스(National Service)”를 ‘1930년 스웨덴 전시회’에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우아한 “내셔널 서비스(National Service)”는 이후 “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라고 명칭이 변경되었고 시대를 초월한 스타일의 아이콘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뛰어난 디자인으로 새로운 아이템과 새로운 색상이 추가되어 여전히 인기리에 생산되고 있다. 또한 루이세 아델보리(Louise Adelborg)는 ‘로스트란드의 위대한 할머니(Rörstrand’s grand old lady)’로 불린다.
1932년에는 “오스틴디아(Ostindia)”가 출시되었다. 예테보리로 이전하고나서 재정상황이 어려워진 로스트란드는 1932년 리드셰핑 도자기 공장(ALP, AB Lidköpings Porslinsfabrik)과 합병한 후 예테보리로 옮긴 지 10년 만인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로스트란드의 모든 생산은 현대적으로 새로 지은 리드셰핑((Lidköping) 공장으로 이전했고 예테보리 공장은 폐쇄했다. 예술감독으로 군나르 뉘룬드(Gunar Nylund 1904-1997, 근무기간 1931-1956)를 영입함에 따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품질 높은 스톤웨어 작품의 시대를 열게 된다. 현대적인 형태와 무광택 및 장석 유약을 사용한 스톤웨어 화병과 그릇은 오늘날 도자기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41년 로스트란드에 들어온 헤르타 벵트손(Hertha Bengtson 1917-1993, 근무기간 1941-1964)은 코카 블로(Koka Blå )와 블로 엘드(Blå Eld (Blue Fire))로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50년에 로스트란드에 입사한 마리안네 베스트만(Marianne Westman 1928-2017, 근무기간 1950-1971)은 1952년 “몬 아미(Mon Amie)”, 1956년 “피크닉(Picknick)”과 같은 밝고 경쾌한 디자인으로 1950년대 스웨덴 사람들이 갈망하던 새롭고 밝은 일상에 부응하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몬 아미”는 마리안네 베스트만이 1940년대 후반 어느 한여름 비 오는 날에 그린 단순한 꽃 스케치가 코발트 블루로 피어나, 많은 가정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예술품이 되었다. 베스트만은 도자기 분야에서 많은 성공을 거둬 로스트란드 직원들 사이에서 ‘도자기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그녀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로스트란드 매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1960년대 베스트만은 스톤웨어, 샤모트, 철로 만든 예술적인 작품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유약은 두껍고 복잡했으며 철제 꽃과 거친 구조가 사용되었다. 형태는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로스트란드의 전성기로 많은 아티스트들과 디자이너들이 근무했다.
뒷줄 왼쪽부터_ 실비아 레우쇼비우스(Sylvia Leuchovius, 39세), 칼 하리 스톨하네(C-H Stålhane, 34세), 비르예르 카이피아이넨(Birger Kaipiainen, 39세), 헤르타 벵트손(Hertha Bengtson, 37세)
앞줄_ 마리안네 베스트만(Marianne Westman, 26세)
196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잉에르 페르손(Inger Persson 1936-2021. 근무기간 1959-1971 / 1981-1996)은 1968년 강렬한 에나멜 색을 구사한 “팝 Pop” 시리즈는 크게 성공한 제품으로 세계적인 호응을 얻었고 로스트란드 판매 증대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팝 Pop” 시리즈는 1969년 이탈리아 파엔차(Faenza) 국제도예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는 대량생산으로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로스트란드는 힘든 시기를 겪는다. 이 시기 많은 예술가들은 회사를 떠났고, 회사도 모든 디자이너의 정규직 고용을 종료하고 프리랜서에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1974년 아일랜드 디자이너 재클린 린드(Jaqueline Lynd, 재키 린드(Jackie Lynd)라고도 부름. 1948- , 근무기간 1974-1990)가 채용되어 인기 있는 많은 패턴을 디자인했다. 1976년 설립 250주년을 맞은 로스트란트는 기념 전시회 개최와 실비아 레우쇼비우스(Sylvia Leuchovius)가 디자인한 “실비아(Sylvia)” 시리즈를 출시했고, 리드셰핑에 로스트란트 박물관을 개관했다. 이 박물관에는 로스트란트 도자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15,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1991년 로스트란드에 온 카린 비요르퀴스트(Karin Björquist 1927-2018, 근무기간 1991-1996)가 디자인한 노벨상 90주년 기념 디너 서비스는 1991년 구스타브스베리에서 개발되었지만 로스트란드에서 생산되었으며 이후 노벨상 축하 행사에서 계속 사용되었고 2015년까지 생산되었다.
21세기를 맞은 2000년에는 1884년부터 사용해온 로스트란드 마크(Mark)를 새롭게 변경했다.
2008년에는 마리안네 베스트만(Marianne Westman 1928-2017)의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몬 아미(Mon Amie)”가 재출시 되었고, 2010년에는 출시된 지 80주년을 맞이한 "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 가 스웨덴 왕실 공식 웨딩 도자기로 재출시되었다. 1932년에 처음 소개된 “오스틴디아 Dstindia” 시리즈는 2012년에 출시 8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틴디아 플로리스 Ostindia Floris”를 선보였다.
2020년에는 루이세 아델보리(Louise Adelborg, 1885-1971)가 1930년에 출시한 스웨디시 그레이스(Swedish Grace) 시리즈 90주년을 기념하여 금테두리의 “스웨디시 그레이스 갈라(Swedish Grace Gala)” 시리즈를 선보였다 로스트란드는 1960년대부터 1990년 사이에 웁살라 에케뷔, 핀란드 Wärtsilä, 학크만(Hackman) 등 여러 소유주를 거쳤다. 2003년 이딸라(Iittla) 그룹에 편입된 후 2004년 생산기지를 헝가리와 스리랑카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2005년 12월 30일 로스트란드 리드셰핑 공장은 완전히 문을 닫았다. 2007년 로스트란드는 이딸라(Ittala), 학크만(Hackman), 아라비아(Arabia)와 함께 핀란드 피스카스(Fiskars) 그룹에 인수되었다. 현재 피스카스 그룹에 속한 로스트란드는 약 300년 동안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어도 여전히 독자적인 생산라인을 통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스웨덴 디자인과 도자기 역사에 이름을 남기며 매일의 식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클래식과 모던함을 추구하며 스웨덴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자기를 선보이는 전통적인 브랜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Mark의 변천
대표 작가
(Alf Wallander 1862년~1914년, 근무기간 1895-1910)
(Gunnar Nylund 1904년~1997년, 근무기간 1931-1956)
(Louise Adelborg 1885년~1971년, 근무기간 1916-1957)
(Hertha Bengtson 1917년~1998년, 근무기간 1941-1964)
(Sylvia Lechovius 1915년~2003년, 근무기간 1949-1971)
(Marianne Westman 1928년~2017년, 근무기간 1950-1971)
(Olle Alberius 1926년~1993년, 근무기간 1963-1971)
(Inger Persson 1936년~2021년, 근무기간 1959-1971 / 1981-1996)
(Jackie Lynd 1948년~ , 근무기간 1974-1990)
자료,사진 출처
https://sv.wikipedia.org/ /wiki/Rörstrand
https://www.mothersweden.com/rorstrand-overview.html
https://www.barnebys.com/blog/the-history-of-rorstrand-in-10-key-d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