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
Meissen
마이센
1710 -History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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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아우구스투스 강왕은 최초의 유럽산 자기(瓷器) 제조소인 "폴란드 왕실 및 작센 선제후국 자기 제조소"를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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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을 바르고 칠할 수 있는 하드 페이스트 백자를 생산, 1713년에 시장에 도자기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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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로고인 교차된 칼 도입. 요한 그레고르 회롤트(Johann Gregorius Höroldt )가 감독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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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마이센 자기의 명성을 확립한 뛰어난 오버글레이즈(Overglaze) 색상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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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있는 바탕 위 흰색 패널 안에 장식이 그려진 도자기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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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쟁 동안 프로이센 군대가 마이센을 점령,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 of Prussia)는 일부 마이센 장인들을 베를린 왕립 도자기 공장(Königliche Porzellan Manufaktur Berlin, KPMB)으로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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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센이 재조직되면서, 드레스덴 아카데미(Dresden Academy)의 C.W.E. 디트리히(C.W.E. Dietrich)가 예술 감독(artistic director)으로 임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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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 미셸-빅토르 아시에(Michel-Victor Acier)가 모델러 마스터(modelmaster)로 임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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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목록(inventory books)과 연동되는 몰드(거푸집) 번호를 각 도자기에 새기는 방법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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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로 마르콜리니 백작(Count Camillo Marcolini)이 마이센 도자기 공장을 운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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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르(Sèvres)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으며,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적 요소가 도입됨, 무광택의 비스킷 자기(Biscuit porcelain, 무유약 도자기)가 흰색 대리석과 유사한 효과를 내도록 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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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 왕국(Kingdom of Saxony)이 수립되면서 마이센 도자기 제조소는 "왕립 작센 도자기 제조소(Royal Saxon Porcelain Manufactory)"로 이름이 바뀌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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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빌헬름 폰 오펠(Carl Wilhelm von Oppel) 광산 고문이 마르콜리니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새로운 제조소 감독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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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고틀로프 쾨른(Heinrich Gottlob Kühn, 1788-1870)을 운영 감독으로 임명하여 당시 가장 중요한 기술 및 공정 혁신을 주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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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크롬 그린 언더글레이즈(chrome green under-glaze) 채색 기법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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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사무엘 아놀드(Johann Samuel Arnold, 1766-1828)가 그린 언더글레이즈(chrome green under-glaze) 채색 기법을 이용해 그린 포도잎 가랜드(Green Vine Leaf Garland)" 디자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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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른(Kühn)이 원형 가마(round kiln)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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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른(Kühn)이 액체 광택 금(liquid bright gold)을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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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로이터리츠(Ernst August Leuteritz)가 로코코(Rococo) 스타일의 도자기 인형들을 현대적으로 개량하여 재출시, "제2의 로코코(Second Rococo)" 시대를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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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소판(lithophane) 기법 도입으로 상업적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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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마이센 도자기 공장이 작센 국왕(King of Saxony)의 소유였다가 1830년부터는 작센 주(State of Saxony) 소유로 변경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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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센 도자기 제조소는 왕립 재무부(royal treasury)의 감독 아래 놓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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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로이터리츠(Ernst August Leuteritz, 1818-1886)가 디자인 부서를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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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비슈탈(Triebischtal)에 새로운 생산 시설 건설, 현재까지도 마이센 도자기 제조사가 자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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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회셀(Erich Hösel)이 1903년 마이센 조각 부서의 수장이 됨, 과거의 스타일의 부활, 재해석. 18세기 도자기 모델들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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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0장의 마이센 도자기 타일로 제작된 대형 벽화 ‘드레스덴 군주의 행렬(Dresden Procession of Princes)’이 공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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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시대(1933년 이후) 작센 주정부(State of Saxony)는 독일의 시대적 이념적 흐름에 따라 마이센 예술가들의 창작의 자유를 제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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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마이센 도자기 공장은 기존에 부유층을 위한 고급 도자기를 제작해왔던 전통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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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민주공화국(German Democratic Republic, 동독)이 수립되면서, 마이센 도자기 공장이 독일 소유로 반환됨, 국영기업(Volkseigener Betrieb, VEB, "인민 소유 기업")이 되어 "VEB 마이센 도자기(VEB Meissen Porzellan)"라는 이름으로 운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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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페터만(Karl Petermann)이 공장장이 되면서, 마이센은 다시 전통적인 제작 방식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예술적 표현의 자유도 점차 회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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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주(州)가 소유주인 마이센 주립 포르첼란 제조회사(Staatliche Porzellan-Manufaktur Meissen GmbH)로 운영

History
마이센 도자기는 최초의 유럽산 경질자기(Hard-Paste Porcelain, 단단하면서도 얇고 두드리면 맑은 소리를 내는 자기)였다. 유럽에서는 경질의 자기를 18세기 초반까지 만들지 못하다가 독일의 마이센 지방의 가마에서 경질의 자기를 태토인 카올린(Kaolin, 고령토)를 발견하여 경질의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마이센 도자기는 18세기 중반까지 최전성기를 누렸으며 도자기의 형태와 디자인에서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와 독일 통일 이후 새로운 방식의 생산라인을 확립하였고 독일 통일 이후에는 주립 도자기 제작소로 바뀌어 지금까지 자기를 생산하고 있다. 유럽 도자기 브랜드 마이센(MEISSEN)은 1710년부터 현재까지 높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유서 깊은 브랜드이다.
17세기에는 전 유럽이 중국 도자기에 매료되었다. 순백의 도자기, 독특한 연성, 웅장한 장식 등 품질과 세련미 면에서 당시의 다른 모든 도자기를 능가했다. 중국과 일본의 수출 도자기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Dutch East India Company) 및 다른 국가들의 유사한 무역 회사를 통해 대규모로 유럽에 수입되었는데 이러한 도자기는 유럽 시장에서 고가였으며, 부와 사회적 지위, 세련된 취향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특히 작센 선제후인 강건왕 아우구스트(August the Strong. Elector of Saxony,1670-1733, 아우구스트 2세)는 이러한 중국도자기에 깊이 빠져있었다. 그의 도자기 사랑은 자신이 직접 도자기 중독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인기 있는 도자기를 구입하는데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제작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기 실험은 에렌프리트 발터 폰 치른하우스(Ehrenfried Walther von Tschirnhaus, 1651-1708)에 의해 이루어졌다. 치른하우스 유리 제조를 연구하며 도자기 제작에도 도전하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그가 실험에 카올린(kaolin)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원료였지만, 치른하우스는 이를 성공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2세는 금 제조를 위해 보호 감금하고 있던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가 연이은 연구 실패 및 도주를 시도하자 치른하우스로 하여금 뵈트거를 감독하게 하고 연구 지원을 하도록 시켰다. 뵈트거는 마지못해 치른하우스의 실험을 돕기 시작했다. 그러나 치른하우스가 1708년 갑자기 사망하자 그가 개발한 제조법은 뵈트거에게 전해졌고 뵈트거는 단 일주일 만에 왕에게 자기 제조가 가능하다고 보고했다. 이후 그는 공식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으며, 타일을 소성하고 채색하는 데 경험이 있던 네덜란드 출신 장인들과 함께 본격적인 자기 생산을 준비했다.
1709년, 아우구스투스 2세(Augustus II)는 "왕립 폴란드 및 선제후 작센 자기 제조소(Royal Polish and Electoral Saxon Porcelain Manufactory)"을 설립하였다. 이 공장은 마이센의 알브레흐츠부르크 성(Albrechtsburg)에 위치한 뵈트거의 연구실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1710년 공식적으로 생산을 시작했다.
마이센 도자기의 발명은 산업 화학 및 재료 과학의 초기 현대 전조로서의 집단적 성취를 나타낸다. 독일 마이센의 작은 마을에서 만들어진 마이센 도자기는 경험적 연구의 격렬한 기간의 결과였고, 높은 예술적 성취 뿐만아니라 무기 비금속 재료의 개발에서도 기술적 성취를 이루어 내었다.

1720년에는 생산 보호를 위해 교차된 검(swords) 모양의 시그니처 로고가 도입되었으며, 이 검 표식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뵈트거가 처음으로 생산한 도자기는 "뵈트거 도자기"(Böttger ware, 독일어: Böttgersteinzeug)로 알려진 극도로 정제된 단단한 붉은 석기(Stoneware)였다. 이는 중국 "이싱 도자기(Yixing ware)"를 모방한 것으로, 주로 찻주전자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커피 포트로도 제작되었다.

유사한 도자기는 네덜란드와 영국의 엘러스 형제(Elers brothers)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뵈트거의 버전은 이들보다 훨씬 더 단단했으며, 주조되거나 부착된(sprigged) 장식 요소들이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소성 전에 본체를 연마하여 유광 처리를 할 수도 있었다. 뵈트거의 도자기 모델들은 바로크 양식의 은식기 및 중국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그는 또한 유약을 입혀 장식할 수 있는 보다 부드러운 석기(Stoneware)도 개발하였다. 이후 마이센은 경질 백색 자기를 개발하여 유약을 입히고 채색할 수 있는 도자기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1713년부터 시장에 출시되었다.

1708년 1월 15일은 알려진 가장 이른 백색 경질 도자기 탄생의 날이지만,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기까지는 5년 더 많은 실험과 시도가 필요했다. 이른바 '뵈트거 도자기'는 1713년부터 뵈트거가 사망한 1719년까지의 초기 생산년도를 나타내며, 그의 경질 도자기 버전은 1730년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뵈트거의 실험적인 도자기는 빠르게 품질이 향상되었지만, 소성된 장식에 성공적으로 채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초로 성공한 장식 기법은 금 장식으로, 먼저 소성된 본체 위에 금을 입힌 후 정교하게 조각한 다음 낮은 온도에서 두 번째 소성을 거치는 방식이었다.
그림이 그려진 장면 바깥쪽에 레이스 형태로 장식된 독일어 라웁-운드 반델버르크(Laub- und Bandelwerk, 나뭇잎과 리본) 문양 패턴(붉은색, 금색 또는 연보라색)이 자주 사용되었다.

A Meissen porcelain hausmaler tea bowl and saucer the porcelain circa 1725, the decoration 1720-30
아우구스투스 2세(Augustus II)는 처음에 요한 야콥 이르밍거(Johann Jakob Irminger)에게 새로운 도자기 디자인을 맡겼다. 이후 1720년, 요한 그레고리우스 회롤트(Johann Gregorius Höroldt or Johann Gregor Herold,1696-1775)가 감독이 되었으며, 1723년에는 화려한 오버글레이즈(Overglaze) 색상을 도입하여 마이센 자기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점점 더 폭넓은 색상 팔레트를 개발하였으며, 이는 마이센 자기의 "고전적인 시대(classic phase)"의 시작을 알렸다.
회롤트가 개발한 에나멜 물감은 오늘날까지도 도자기 채색의 기본이 되고 있다.
요한 그레고리우스 회롤트(Johann Gregorius Höroldt or Johann Gregor Herold , 1696년 8월 6일, 예나 – 1775년 1월 26일, 마이센)는 독일의 화가이자 도자기 화가였다. 그는 1723년부터 마이센 도자기의 장식 스타일을 정의하는 초기 중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720년에 두 파키에 빈 도자기 공장에서 마이센으로 옮겼고, 1723년에는 아우구스투스 2세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으며, 주로 도자기 디자인과 그림 작업에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는 직접 디자인을 하고 일부 작품을 직접 그렸으며, 이는 공장의 더 큰 화가 팀을 위한 지침으로 사용되었다. 그는 특히 시누아즈리(Chinoiserie, 중국풍)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며, 마이센에서 사용되는 색상 팔레트를 크게 확장했다. 회롤트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는 그가 1739년에 디자인한 블루 어니언 패턴 (Zwiebelmuster)이다.


위의 접시은 언더글레이즈 블루로 그려진 이른바 "양파 무늬"(zwiebelmuster)로, 마이센 디자이너들이 중국 원형에서 가져와 변형시킨 것이다. 이 수정된 무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접시 테두리에 보이는 "양파"는 석류를 스타일화해 묘사한 것이다. 중국에서 석류는 그 많은 씨앗 때문에 다산을 상징하며, 행운, 풍요, 훌륭하고 성공적인 자녀들에 의해 축복받을 미래 등의 의미로 확장된다. 이 무늬에서 흔히 보이는 꽃은 불멸을 상징하는 국화이며, 금색과 노란색의 방사형 꽃잎으로 인해 태양과도 연관된다.
언더글레이즈 블루(Underglaze Bule)로 채색된 그림은 수채화 화가와 유사한 기술을 요구한다. 한 번 안료가 점토 또는 비스킷 소성 표면에 닿으면 쉽게 지워지지 않아 되돌릴 수 없다. 초기 마이센 도자기의 그림은 주로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동양풍 디자인을 모방했으나,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유럽 풍경을 묘사한 그림도 그려졌다.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1719)
연금술사이자 화학자로,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의 경질자기를 개발하여 유럽 도자기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Artist
요한 그레고리우스 회롤트(Johann Gregorius Höroldt, 1696–1775)
1720년 마이센에 합류하여 중국풍의 '시누아즈리(Chinoiserie)' 패턴과 '코미디아 델 아르테(Commedia dell'arte)' 장면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려한 에나멜 장식을 도입했다.


요한 요아힘 켄들러(Johann Joachim Kändler, 1706-1775)
요한 요아힘 켄들러(Johann Joachim Kändler, 1706-1775)는 독일의 도예가로서, 특히 마이센 도자기 공장에서의 그의 역할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731년에 마이센에 합류하여, 그곳에서 주요 모델러로 활동하며 1733년부터 1775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이 공장의 예술적 방향을 주도했다.
켄들러는 자신의 세밀한 작업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마이센 도자기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특히 도자기 동물 조각, 인물, 그리고 정교한 장식용 조각품을 만드는 데 능숙했으며,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적이면서도 때로는 풍자적이거나 유머러스한 특징을 포함하고 있어 당시 유럽의 궁정에서 크게 선호되었다.
켄들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몽키 오케스트라(Monkey Orchestra, Monkey Band라고도 함)'로 불리는 일련의 조각품으로, 옷을 입은 원숭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리즈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며, 도자기 조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창의적인 접근을 보여주었다.
그의 기술과 창의성은 마이센 도자기를 유럽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자기 중 하나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집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명한 "몽키 오케스트라(Monkey Orchestra)" 시리즈

“몽키 오케스트라”는 1명의 지휘자와 보면대, 16명의 악사, 4명의 여가수, 모두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이센 특유의 섬세한 조형미를 품고 화려한 색채를 입혀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양식을 도자기라는 조형 재료로 구현한 것이다. 또한 생주르를 좋아했던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취향과 유럽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되어 있다.
1720년대, 아우구스투스 강왕(Augustus the Strong)은 그가 건설 중이던 "일본궁(Japanese Palace)"을 장식할 대형 동물상 시리즈를 주문하였다. 켄들러는 1733년부터 이 시리즈를 주도적으로 맡았으며, 대부분의 동물상 모델을 직접 조각하였다. 이 작품들은 일반적인 도자기 인형보다 훨씬 크기가 컸으며, 제작 과정에서 기술적 난제가 많았다. 현재 완성된 동물 조각상들이 마이센 뮤지엄에 모여 전시되어 방문객들에게 놀라움과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프리드리히 엘리아스 마이어(Friedrich Elias Meyer, 1723–1785)
켄들러와 함께 마이센에서 활동한 조각가로, 섬세하고 우아한 인물 조각으로 유명하다.
미셸 빅토르 아시에(Michel Victor Acier, 1736–1799)
프랑스 출신의 조각가로, 마이센에서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의 전환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로이터리츠(Ernst August Leuteritz, 1818–1893): 마이센의 예술 감독으로, 전통적인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도자기 스타일을 개발했습니다.
에밀 파울 뵈르너(Emil Paul Börner, 1888–1970):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스타일을 도입하여 마이센 도자기의 현대화를 이끌었습니다.
피터 스트랭(Peter Strang, 1936–2020): 마이센의 수석 조각가로, 현대적인 감각의 도자기 조각을 통해 마이센의 예술적 범위를 확장했다.



1709년에 지어진 드레스덴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에 붙어 있던 왕실 마굿간 슈탈호프(Stallhof) 외벽에 그려진 벽화 '군주의 행렬' . 작센 지방(Sachsen)을 다스린 베틴 가문(Wettin)의 역대 군주들의 기마상 그림을 연대기식으로 표현했으며, 베틴 가문 800주년을 기념하여 1871년~1876년 동안 화가 빌헬름 발터(Wilhelm Walther)가 그렸다. 이후 벽화 손상이 심해지자 1907년 마이센(Meissen)에서 만든 자기 타일 벽화로 교체되었다. 벽화의 길이 102m로 25,000장의 마이센 도자기 타일로 제작되었다. 역대 군주 35명의 기마상과 많은 병사, 과학자, 예술가, 농부 등이 같이 그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공습으로 레지덴츠 궁전은 파괴되었으나 슈탈호프는 손상이 안되어 자기 벽화가 남아 있다.
또한, 1816년에는 트리비슈탈(Triebischtal)에 위치한 마이센 도자기 제조사 인근에 전시장이 개관되었으며, 이곳은 마이센 도자기의 모델 컬렉션과 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Tableware
뵈트거(Böttger)**는 일찍부터 식기 생산의 가능성을 예견하였으며, 최초의 식기 세트(tableware services)는 1720년대에 제작되었다. 초기 식기 세트는 단순한 형태였으나, 켄들러(Johann Joachim Kaendler)가 곧 세트에 어울리는 장식을 도입하였다. 그는 또한 1745년 "뉴 컷아웃(New Cutout)" 패턴을 제작하였으며,
이 패턴은 물결 모양의 컷팅된 가장자리가 특징이다.

꽃잎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형태와 물결 모양의 뾰족한 가장자리, 그리고 이중 분할된 아칸서스(Acanthus) 잎 모양의 손잡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디자인은 켄들러의 대표적인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마이센 로즈(MEISSEN Rose)’, ‘어니언 패턴(Onion Pattern)’, ‘그린 바인 리프 가랜드(Green Vine Leaf Garland)’와 같은 유명한 장식 스타일도 이러한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비교적 절제된 디자인이었으나, 동시에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마이센의 대형 식기 세트와 외교 선물
초기에는 작은 차(tea) 및 커피 세트(coffee services)가 주로 생산되었으나, 1730년대부터 대형 문장(armorial) 도자기 디너 세트(dinner services)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강왕 아우구스투스 2세(Augustus the Strong)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곧 독일 및 해외의 귀족, 왕족들도 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마이센 식기 세트는 외교적 선물(diplomatic gifts)로도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작센 공주 마리아 아말리아(Maria Amalia of Saxony, 아우구스투스 강왕의 손녀)는 나폴리-시칠리아 왕국의 국왕(후에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 Charles III of Spain)과 결혼하였으며, 그녀의 지참금(dowry)에는 마이센 식기 세트 17점이 포함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부부는 나폴리에서 카포디몬테 도자기 공장(Capodimonte porcelain factory)을 설립하게 되었다.
마이센의 대표적인 식기 세트
1. 가장 유명한 "백조 세트(Schwanenservice, Swan Service)"

2. "뫼렌도르프 디너 세트(Möllendorff Dinner Service)"

1760년대에 제작된 또 하나의 대형 디너 세트이다. 현재 이 세트도 여러 박물관과 개인 컬렉션에 분산되어 있다.
대표적인 마이센 도자기 패턴
블루 어니언 패턴(Blue Onion, Zwiebelmuster)

마이센 도자기 제조소의 청화 언더글레이즈 ‘교차된 검(Schwertermarke)’ 마크, 1940년경, 제작드레스덴 국립미술관(State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블루 어니언 패턴(Blue Onion, Zwiebelmuster)은 사실상 중국 석류(pomegranate) 문양을 모방한 디자인이다. 1739년 요한 그레고르 회롤트(Johann Gregor Höroldt)가 디자인하였다. 청나라 강희제(Kangxi) 시대의 중국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60개 이상의 경쟁 업체들이 이 패턴을 복제하였으며, 일부는 심지어 "Meissen"이라는 마크를 사용하기도 했다. 1926년, 독일 대법원(German Supreme Court)은 마이센의 블루 어니언 패턴(Zwiebelmuster)이 공공 영역(public domain)에 속한다고 판결하였다. 블루 어니언 패턴은 3세기 가까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며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패턴이다.
"궁정 용(Court Dragon)" 및 "붉은 용(Red Dragon)" 패턴
- 중국풍 용(Dragon) 디자인이 특징인 식기 세트.
- 주로 언더글레이즈 레드(underglaze red) 바탕에 금박(gilt) 장식이 들어간 용이 접시 가장자리 주변을 날아다니는 듯한 디자인이다.
- 접시 중앙의 움푹 파인 부분(cavetto)에는 메달리온(medallion) 장식이 들어가 있다.
- 이 패턴의 변형 중 하나는 히틀러의 "켈슈타인하우스(Kehlsteinhaus, 독수리 요새)"에서도 사용되었다.
3. 현재까지 생산되는 인기 패턴
- "퍼플 로즈(Purple Rose)" 패턴
- "포도 잎(Vine-leaf)" 패턴
trademark
알브레흐츠부르크 성(Albrechtsburg)은 ‘백색 금’(white gold, 도자기)의 제조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도자기 제조의 비밀(arcanum, 숨겨진 지식)을 아는 작업자는 극소수였으며, 이들조차도 전체 공정이 아닌 일부 과정만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 덕분에 마이센은 몇 년 동안 유럽에서 경질 자기(hard-paste porcelain) 생산의 독점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717년, 마이센의 장인이자 책임자이자였던 사무엘 스퇼첼(Samuel Stöltzel)이 제조 비밀을 매각하면서 빈(Vienna)에서 경쟁 업체가 설립되었다. 이 제조법의 핵심은 카올린(kaolin, 고령토)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1760년경에는 유럽에서 약 30개의 도자기 제조업체가 운영되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경질 자기가 아닌 연질 자기(Soft-Paste Porcelain)를 생산하고 있었다.
마이센 도자기의 정품을 식별하기 위해, 마이센은 초기에는 손으로 그린 마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곧 언더글레이즈 블루(Underglaze blue)로 소성된 마크를 개발하였고, 1720년에 도입 후 1731년부터는 공식 칙령에 따라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초기의 마크로는
- AR(Augustus Rex) – 국왕 아우구스투스의 모노그램
- K.P.M.(Königliche Porzellan-Manufaktur) – 왕립 도자기 제조소
- M.P.M.(Meissener Porzellan-Manufaktur) – 마이센 도자기 제조소
- K.P.F.(Königliche Porzellan-Fabrik) – 왕립 도자기 공장
등이 있었으나, 이후 작센 선제후가 신성 로마 제국의 대원수(Arch-Marshal)였던 것에서 유래한 "교차된 검(crossed swords)" 로고로 대체되었다.
마이센의 로고에는 세부적인 변형이 있어 도자기의 제작 연대를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료, 사진 출처
lections/object/nmah_574897
https://www.visit-dresden-elbland.de/en/poi/procession-of-princes
https://www.meissen.com/int/neuer-ausschnitt-en
https://www.meissen.com/int/momentodetail/peterstrang
https://violity.com/en/new/5814-iogann-byottger-izobretatel-evropejskogo-belogo-farfora
https://www.meissen-lese.de/persoenlichkeiten/b/boettger-johann-friedrich/johann-friedrich-boettger/
https://robbig.artsolution.net/contact
https://www.skinnerinc.com/news/blog/meissen-porcelain-5-tips-for-collectors/
https://www.auktionshaus-stahl.de/en/article/63702-friedrich-elias-meyer-a-coffee-service-34-neuzierat-34-with-pattern-56-34-bleu-mourant-34-for-6-persons